홈

프로필

출처:천하 제일의 샘물.


남문은 1995년에 지어졌고 입구현판에 적혀있는 “표돌천” 세 글자는 건륭제가 쓰신 글자입니다. 이문은 낙원문으로도 불리는데 낙수의 발원지에 근처에 있어서 얻어진 이름입니다. 표돌천공원은 1956년에 정식으로 문을 연 공원으로 1964년 1985년 및 1999년의 세차례에 걸쳐 확장하였고 면적 약 10.5헥타르정도의 자연산수공원입니다. 이 공원은 1982년 중국공산화 이후 새로 조성된 관광지중 전국14대 관광지로 선정되었으며, 2002년 국가관광국에서 4A급 관광지로 선정하였습니다. 전체 공원은 크고 작은 30여 개의 샘으로 구성되어 있고, 72개의 이름난 샘 중에서 14개가 이 곳에 있습니다. 여러 샘물들로 표돌천 샘물군이 구성되는데 표돌천 샘물군은 제남 4대 샘물군 가운데 으뜸입니다.      여기 있는 샘물은 주천, 석만천, 감로천입니다.    
백설루, 이곳은 명나라때 저명한 문학가인 이반룡의 서재입니다.    
무우천,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으로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열망을 걸어 놓았습니다. 백설루 대무대, 1996년 백설루와 같은 시기 만들어진 2층이 연결된 모조 고건축물입니다. 총면적은 100여 평방미터로 무대의 길이는 6미터, 폭 12미터입니다. 여기서는 늘 경극, 곡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공연되며 전국에서 이름난 극단에서 수차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쌍어비 : 현재 보고 계시는 비석은 쌍어비인데 야손비라고도 합니다. 이 비석에는 할아버지 강희제와 손자 건륭제의 필적이 새겨져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쌍어비라고 합니다. 정면에는 “격단”두자가 강하고 힘있게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강희제가 1684년 표돌천에 왔을 때 쓴 것입니다. 뒷면에는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가 표돌천에 왔을 때 쓴 《재제표돌천작》이 있습니다. 이 곳의 문장의 주요한 뜻은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두분 황제가 같은 비석에 글을 적은 것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표돌천 : 지금까지 천하제일 샘물로 칭해지는 표돌천을 보았습니다. 샘은 직사각형으로 길이 30미터, 폭 18미터, 깊이 2.6미터입니다. 표돌천의 역사는 유구한데 하남성 안양에서 출토된 갑골문을 통해 표돌천은 문자로 기록된 것이 3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표돌천의 물은 맑고 깨끗해서 바닥까지 보이는데 물이 달고 세균이 적으며 국가음용수질기준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천연음용수로 직접 마실 수 있습니다. 건륭제가 북경에 있을 때 북경의 옥천수를 제일천으로 삼았는데 강남순행시 옥천샘물을 지니고 가면서 음용수로 사용했습니다. 건륭제가 표돌천에 이르러 표돌천의 물맛을 보고 표돌천물이 북경옥천물보다 더욱 좋다고 여겨 옥천을 “옥천표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또한 표돌천을 천하제일천으로 삼고 강남순행시 음용수를 옥천물에서 표돌천물로 바꾸었습니다. 표돌천물로 차를 끓이면 맛과 색이 훌륭하여 ‘표돌천물을 마시지 않으면 제남여행 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중간에 있는 관람정은 표돌천을 관람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건륭제가 제남에 왔을 때 바로 이 곳에서 표돌천을 감상하였습니다.    
1953년 모택동 주석이 제남에 왔을 때도 바로 여기에서 표돌천을 감상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있는 다리를 ‘학교’라고 하는데 명나라 만력제 초기 역성지현인 장학명이 처음 만들었는데 원래는 나무다리였습니다. 후에 여러 차례 개축을 통해 지금의 평평한 돌다리로 바뀌었습니다.상지당 : 상지당은 상지천 옆에 있어서 얻어진 이름으로 상지당은 원래 ‘금선서원’으로 옛날에 학술강연을 하던 곳입니다. 청나라 동치8년(1869년) 산동순무 정보정은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편액을 ‘상지당’이라고 직접 썼습니다.      
명천구는 노금선천, 와우천, 황화천, 류서천, 신금선천, 수옥천, 마포천으로 구성됩니다. 고증에 의하면 제남중심 구도심지역 2.6킬로미터 범위내에 유명한 샘물이 135개소가 있었고 도시 전체로는 유.무명의 741개소의 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남은 옛날부터 집집마다 샘물이 솟고 버드나무가 있다는찬사를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수양버들이라고도 하는 버드나무는 제남의 시나무이고 시꽃은 연꽃입니다. 제남의 수많은 천연샘물은 제남의 특수한 지리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남은 남쪽으로 태산을 의지하고 북쪽으로는 황하가 지나가며 지세는 남고북저로남부산지의 지하암석층은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지표면에 석회암이 녹아 만들어진 도랑이 있어 대량의 지료수가 땅으로 스며들어 땅 속으로 흐르는 물길이 형성되는데 북부 대명호 일대의 지질은 단단하여 물이 침투하지 않는 화성암으로 되어 있어 남부의 대량의 지하수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북부의 화성암에 막혀 구도심지역에서 물이 쌓이는데 계속 쌓이다가 지대가 낮고 얇은 곳을 뚫고 샘물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이청조 기념당 : 1959년 청말 정보정의 사당 옛터에 새로 지은 것으로 2001년 다시 옛집부분을 증축하였는데 전체 면적이 4000평방미터입니다. “이청조기념당”의 편액은 1959년 곽말약이 쓴 것이다. 이곳 입구에는 하나의 병풍이 있는데 정면에는 “일대사인” 뒷면에는 “전용천추”라고 새겨져 있는데 곽말약의 글씨입니다. 지금 들어온 마당은 면적이 360평방미터로 마당에 심은 파초, 해당화, 계수나무꽃은 모두 이청조가 생전에 좋아하던 식물입니다. 몸채에서는 도면, 글, 책, 초상, 회화 등으로 다양한 이청조의 일생과 위대한 업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청조는 고대중국의 여류시인 중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그녀의 시는 후세에까지 전해져 사람들은 사의 성인이라는 뜻의 ‘사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안구거: 다음에 우리는 뒷마당의 이안구거를 관람하겠습니다.
이안구거는 동서 양쪽의 뜰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면적이 3500평방미터로 밀랍인형 4조를 진열하고 있는데 이청조의 일생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5.3참사기념당 : 5.3참사 또는 제남참사라고 불리는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5.3참사는 1928년 5월 3일 일본침략자가 만든 사건입니다. 78년전 중국국민당정부 북벌군이 제남을 점령한 후 일본은 교민보호라는 구실로 본토로부터 오천명의 군사를 청도로 상륙시키고 교제철도를 통해 산동성 제남으로 진입했습니다. 5월 3일에 제남을 지키던 중국군대를 습격하여 5월 11일에 제남을 함락시켰습니다. 일본군이 제남을 점령한 후 살인, 노략질, 강간 등 만행을 저질렀으며 사망자 6123명, 부상자는 1770명에 이릅니다. 아울러 국제법도 공공연히 무시하여 교섭중이던 중국외교관 채공시와 16명의 수행원도 살해하였습니다. 이것이 세계를 놀라게한 제남참사입니다. 이곳을 산동성 애국주의교육장으로 삼고 매년 5월3일 이곳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